모바일 메뉴 닫기
칼럼
자살보험금 -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게시일 2022-05-19
첨부파일

자살보험금 -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IMF시절에도 그랬고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던 금융위기 때도 위기에 몰린 중년 가장이 남은 가족을 위해 사망보험금을 타려고 자살을 한다는 소식들이 종종 우리들을 슬프게 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비극적인 이런 일들을 일상처럼 지켜보며 살고 있다.


통계청의 '2020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른 자살자 수는 13,195명으로 하루 평균 36.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36명이란 숫자가 실감 안날 수도 있지만 2011년부터 10년간을 보면 자살 사망자 수는 136천여 명으로 작은 도시의 인구 전체가 흔적도 없이 통째로 사라진 규모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우리나라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은 24.6명으로 OECD 평균 11명의 두 배가 넘는다. 왜 이럴까? 혹시 사회 구조와 제도가 방관을 넘어 자살을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계속되는 경제위기와 금융위기, 여기에 3년차로 접어드는 코로나 위기까지 본다면 사회 양극화로 인한 극심한 소득 불균형, 실업, 가계경제 파탄 등으로 인한 사회문제들이 각 계층의 약자와 소외자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사는 게 너무 힘든 사회다.

하지만 법과 제도까지 자살을 떠올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여 새로운 삶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포자기의 결정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보험 약관을 살펴보자. 자살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보험약관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로 하고 있으면서도 예외적으로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200997772)은 이러한 예외에 대하여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性行),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진행 경과와 정도 및 자살에 즈음한 시점에서의 구체적인 상태,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과 자살 무렵의 자살자의 행태,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 기타 자살의 동기, 그 경위와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고 하여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심신상실의 범위를 현저하게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법하다.


한편 보험계약에 대하여 재산 또는 생명이나 신체에 불확정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전제로 한다고 규정한 상법 제638조를 고려하면 보험금 지급의 전제가 되는 보험사고의 핵심요건은 불확정성 내지는 우연성이다.


때문에 의도한 보험사고 즉 고의에 의한 보험사고의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자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불확정성 내지는 우연성의 결여를 이유로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스스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을 한 경우까지 우연성이 결여된 고의에 의한 행위로 보기 어렵고, 유족보호의 측면 등을 고려하여 이러한 예외조항이 도입된 것이다.


외국의 상황을 보면 미국의 경우 대다수 주에서 자살 관련하여 보험약관에 ‘while sane or insane'(제정신이든 정신이상이든)(John Dobbyn, Insurance Law in a nutshell, West Publishing Co., 1989. p77)이라고 하여 자살의 경우 정신적 문제와 무관하게 예외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다만, 보험계약의 본질인 우연성과 유족보호라는 측면을 고려 하여 몇 개 주에서 계약 후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자살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 자살과 관련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예외를 넓게 허용하면 이는 곧 불확실성 내지 우연성이라는 보험의 본질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고, 나아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고액의 보험금을 노리는 생명경시의 풍조가 만연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은 국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인 견해다.


따라서 예외 없이 자살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자살 관련 보험금 지급의 예외인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매우 엄격한 조건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유가 있다면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의 자살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정기간(현행 생명보험표준약관에서는 보장개시일로부터 2) 경과 후에는 거액의 보험금이 아닌 납부한 보험료에서 일정 금액을 추가한 정도의 제한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통해 보험 본질의 훼손을 막고, 유족보호 측면도 고려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마감하는 풍조를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살이 더 이상 보험금 지급사유도 되지 않을 뿐더러 가족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법원과 사회가 애써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우리사회는 자신의 삶과 사망보험금을 통한 가족부양이라는 생사의 기로에 선 중년의 가장들의 자살을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법무법인 도원 변호사 : 장준형

[저작권자 (c)한국보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원문링크: https://insnews.co.kr/design_php/news_view.php?firstsec=5&secondsec=51&num=68315
이전 글 소득 차이로 인한 ‘사람값’ 논란 개선하자
다음 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