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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품위 있는 운전의 시작 - 배려
게시일 20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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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운전의 시작 - 배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13천여건의 교통사고(보험사고 기준)가 발생하고 있다. 1분마다 9건의 교통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인데 그만큼 사고에 대한 분쟁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통사고 처리상황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사고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며 심지어는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모든 선진국이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특히 유럽의 교통사고 처리과정을 보면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다. 독일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 경찰을 부르고 운전자들간에 사고시간, 장소, 운전자 인적사항, 차량번호, 핸드폰번호, 보험사정보 등을 적는 사고카드(Unfallkarte)를 작성하여 각자의 보험회사에 제출하면 보험회사들 간에 협의를 통해 서로의 피해를 보상을 하는 것으로 사고처리가 마무리된다. 운전자들끼리 목소리를 높이며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싸울 일이 없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특수성 때문일까 경찰청에는 일선서의 교통사고조사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해서 다투는 민간심의위원회가 있고 손해보험협회에는 교통사고 당사자들의 과실 분쟁에 대하여 심사를 하는 자동차사고 과실비율분쟁 심의위원회가 분주히 운영되고 있다. 또한 전국 각지의 법원에서는 과실 분쟁에 대하여 수많은 건이 소송으로 다투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각 절차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점은 교통사고 당사자들이 거의 모두 상대방 탓을 하며 소위 ”0:100“을 주장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경찰청 민간심의위원회 사건이 있었다. 사안은 진로변경하는 차량과 후방에서 진행하는 차량 사이의 충돌 사고였다. 진로 변경 차량의 운전자는 자신이 방향지시등을 켰음에도 상대방이 전혀 양보를 하지 않는 바람에 충돌한 것이어서 추돌차량의 일방과실이라고 주장하고, 후방에서 충돌한 차량의 운전자는 갑자기 진로 변경하다가 급정지한 차량 운전자의 일방과실이라고 격렬하게 주장하면서 다투는 경우였다. 손해보험협회의 과실비율분쟁 심의위원회 사건의 당사자들 주장은 위의 사례와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민간이나 경찰의 조사에 승복하지 못하면, 결국 법원을 통한 소송을 하게 되는데, 몇십만원의 소액 분쟁임에도 한치의 양보 없이 항소심까지 진행되는 경우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시간은 물론 소송비용과 본인의 감정까지 상해가며 소송을 한들 본인의 주장처럼 상대의 일방과실로 끝나는 일이 아님에도 끝까지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10. 28. 선고 항소심 판결을 보자. 원고는 직진하는 차량을 목격하고도 비보호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사고의 원인은 피고의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는 자신의 차량이 이미 교차로에 먼저 진입하여 비보호 좌회전하고 있었는데, 상대차량이 전방주시의무, 회피조치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은 채로 과속으로 진행함으로써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원고 차량의 과실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본 사건은 쌍방과실 사고이며, 원고와 피고의 과실 비율은 70:30이라고 판결하였다. 법원은 피고 차량에 대하여는, 비보호 좌회전하면서 맞은편 도로에서 직진하는 원고 차량의 동태를 잘 살피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 잘못이 있고, 원고 차량에 대하여는, 신호에 따라 직진하긴 하였으나 피고 차량이 맞은편 도로에서 이미 교차로에 진입하여 좌회전하고 있었는데도 전방주시 의무를 게을리하여 상대 차량의 우측 뒷부분을 충격하였다. 피고 차량으로서는 원고 차량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시했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와 피고는 서로 상대방 차량의 일방과실을 주장하였지만, 법원은 쌍방과실이라고 인정하면서 사고 당시의 제반 상황을 참작하여 과실비율을 산정한 것이다.


오늘날 피해 정도가 크지 않은 수 많은 교통사고 사건이 경찰의 조사, 보험사의 중재를 거치고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법원을 통한 법적 분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느끼는 점은 뒤에서 추돌한 일방과실을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서로의 과실이 조금이라도 경합되는 것인데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다시 말해 운전자의 배려심이 너무 부족한 것이 아닌가하는 답답한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자동차나 도로는 모두 우리 사회의 유용한 발명품들이다. 이러한 멋진 발명품들을 이용하는 우리 현대사회인들은 운전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운전을 하는 문화 측면에서는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배려심을 기본으로 장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법규는 우리가 지켜야 할 행동의 최대한이 아니다. 최소한이다. 나는 법규를 어긴 것이 없으니까 과실이 없다, 사고는 상대방의 일방과실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편협한 주장일 뿐이다. 사실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는 순간 양보하고 배려하며 운전하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렇게 사고가 많이 일어날 일도 없다. 자율주행 자동차나 AI가 가지지 못하는 우리 인간만의 가치, 그것은 배려와 품위가 아닐까.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 : 홍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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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링크:  https://insnews.co.kr/design_php/news_view.php?firstsec=5&secondsec=51&num=69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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