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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도 변화는 문화를 바꾼다
게시일 2022-05-19
첨부파일 2022. 4. 판례평석.pdf

제도 변화는 문화를 바꾼다



봄이 되면 병아리같은 어린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아파트 주차장이나 골목길을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너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길에 부모는 늘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엄마가 학교 가는 아이에게 예전부터 꼭 하는 말이 있다. “차 조심 해라”. 이상한 것은 중년이된 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말을 아직도 우리의 아이들도 듣고 있다는 것이다. 차가(운전자가) 사람을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차를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말이다.


우리나라는 왜 어릴 때부터 사람이 차를 조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정과 사회에서 강조하는 나라가 되었을까? 교통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세기에 걸쳐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차조심을 시키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 같다.


2020년 우리나라의 12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4명으로 2000555명에 비해 23분의1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중 보행중 사망자 비율은 38.9%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았으며, 회원국 평균 19.3%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어린이 뿐만이 아니고 국민 모두에게 차조심을 시키는 것이 필요한 나라라는 것이 통계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통문화가 오늘날과 같이 황폐화 되고, 교통사고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큰 소리 칠 수 있는 후진적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1982년 제정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하 교특법)의 영향이 크다.


교특법 제4조 제1항은 교통사고를 일으킨 차가 보험업법 등에 따른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된 경우에는 제3조 제2항 본문에 규정된 죄를 범한 차의 운전자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다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운전자에 대한 책임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이처럼 교통사고의 유형에 따라 특례를 부여한 것은 물론 교통사고 책임에 대해 공소권까지 면제하는 법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교특법 제정 취지는 피해의 신속한 회복국민생활의 편익 증진이라고 입법 이유에 설명되고 있다. 그런데 국민생활의 편익증진 혜택을 사고를 낸 운전자가 받는다는 것이 참 불편하다. 이 때문에 교특법을 만든 이유가, 그 당시(1980년대초) 고위 공직자나 사회 고위층의 자가 운전 사고로 인한 형사처벌의 위험성 방지가 목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시중에 돌곤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산업화 시대의 효율 중시 풍조가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교통강자가 교통약자를 보호하고, 차가 사람을 조심하는 것이 정당한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종합보험에 가입한 차량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12대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운전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사고를 낸 운전자의 입장을 강해도 너무 강력히 보호하는 법이 돼버린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운영결과 우리나라의 교통문화는 황폐해지고 사람이 차를 조심하게 된 사회 문화가 형성됐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자동차보험 가입을 장려한 측면이 있으니 반사적 이익을 보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안 일어나도 될 사고가 크게 증가해 버렸으니 이법은 안전운전을 하지 않고 사고를 낸 운전자를 빼고는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법이 돼 버렸다.


요즘도 자동차보험 보상현장에서는 보험가입자(교통사고 가해자)가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호통치면서 왜 나에게 전화하느냐? 보험에 다 가입되어 있는데 보험사 직원하고 이야기하면 될 것이지, 왜 나를 귀찮게 하느냐!”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실정이다. 우리가 늘 보는 장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교통사고를 제외하고 모든 사고의 가해자는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처벌을 받게 되며, 가해자는 처벌을 경하게 받기 위하여 피해자와 형사합의를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여 민형사상 합의가 되어야 처벌을 경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통사고의 경우에는 가해자가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사과도 하지 않고, 피해자는 적반하장의 상황에 분노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 결국에는 가해자 중심적 교통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2004. 9월 한 대학생이 서울 강남구에서 아파트 앞 3차로 도로를 횡단하다가 승용차에 부딪혀 약 12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폐쇄성두개천장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그 후 그 대학생은 뇌손상으로 인한 좌측 편마비와 안면마비가 오는 등 심각한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게 되었고. 결국 학업을 중단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검사는 교특법에 따라 가해 운전자에게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결정을 하였고, 대학생측은 교특법 제4조 제1항이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에 관한 과소보호 금지원칙에 위배되고, 헌법상 평등권 및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대하여 2009. 2. 26. 중상해의 경우에 위헌이라는 결정을 하였는데, 주문에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제1항 본문 중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피해자로 하여금 중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명기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교특법의 불합리성을 인식하여 피해자의 상해가 중상해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위헌이라고 인정한 것으로서 입법자의 의사도 유지하면서 중상해의 경우에는 기소할 수 있도록 한 절충적 견해이다. 중상해라는 개념의 불확정성을 비판하는 견해도 있지만, 일정 정도 교특법 조항의 불합리성을 국가기관이 인정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차보다 보행자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9년에 소위 민식이법이라고 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이라 한다) 및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한다.


2019. 9. 11. 당시 만 9세이던 민식이는 동생(7)과 함께 충남 아산의 중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도로 맞은편에 있는 어머니가 일하는 가게로 가기 위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였다. 이 사고로 민식이는 사망하고 동생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 사고 후 특가법을 개정하여 소위 민식이법을 개정하였는데,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어린이 상해의 경우 1년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하고, 어린이가 사망한 경우에는 벌금형은 없고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 규정이 가중되었다. 그런데 이 법 또한 너무 급하게 처리되다 보니 법으로서 행위와 처벌의 불균형, 일률적으로 과도한 법정형 등 법리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1982년에 제정된 교특법이 가해자 중심적 운전 문화를 형성하게 만들었고, 그 이후 수십년이 지나서 우리 사회의 난폭한 운전 문화가 문제 되자, 2019년에는 어린이 보호라는 목적하에 또 과도한 입법이 형성된 것이다. 이는 제도와 문화의 반작용이 너무 충격적으로 반응한 결과로 보이는데, 우리 시대에는 차보다는 사람을 보호하고, 산업사회의 효율보다는 사회 구성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한 가치임을 일깨워 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즉 교통과 관련된 입법과정과 그로 인해 발생한 현상들을 객관적 시각에서 판단해보고 그에 대한 평가와 개선을 통해 사회는 발전해 나간다는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 제도는 다소 급격하게 바뀌었지만, 그 정신을 살려서 우리의 교통문화가 선진화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최근에 안전속도5030 정책(도시부의 차량 제한속도를 기본 50km/h, 주택가 도로 등 보행위주 도로의 제한속도를 30km/h로 조정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고 이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부 및 지자체의 노력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런데 5030 정책의 시행과정을 보면 앞으로의 교통정책이 어떻게 입안되고 시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정부, 교통전문가, 시민단체, 교통유관기관들이 모두 참여하여 장기간의 기획과 의견수렴을 통해 탄생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교통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한 결실이다.


특히 지난 2021년은 교통안전 측면에서 차보다 사람이 우선하는 교통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 해로 기억된다. 417일 전국적으로 시작된 안전속도 5030’ 정책은 도로에서 제한속도를 낮추면 경제적으로 손해라는 적지 않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행자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전격 도입됐다. 많은 불만과 반대가 있었지만 시행후 1년이 가까워져 오는 현재 국민의 정책 수용도 조사 결과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소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인식이 우세해진 것이다.


여기에 보행자 안전을 위한 세 가지 중요한 법도 제정이 됐다.

우선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기존에는 보도가 없는 도로에서 보행자가 차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통행해야 했지만 이제는 보도나 차선이 없는 도로에서는 운전자가 보행자를 살피며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보행자가 차를 신경 쓰며 걷지 않아도 된다.


또한 교차로 초입부터 빠르게 우회전하는 차량이 일으키는 보행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적색 신호에서 우회전할 때 차량의 일시정지 의무를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회전하는 차량이 교차로에 진입할 때 일단 정지하면 연간 100명 이상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도로교통법은 보행자 우선 도로를 공식적인 도로 유형으로 정의하고 차량의 속도를 시속 20이내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도로교통법에 근거가 없어 보행자 우선도로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행자가 특별히 보호받을 수 없었지만 이젠 법적으로도 보행자가 보호되는 도로로 바뀐다.


이처럼 교통관련 법만 보더라도 반세기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그로 인한 시행착오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사회적 합의와 인식의 변화로 인해 선진국에 걸맞은 제도로 법이 바뀌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이 차를 조심해야 한다는 기존의 교통문화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 이미 시작됐듯이 이제 제도의 변화를 통해 어긋나 있는 우리의 문화를 바꾸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 : 홍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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