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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는가
게시일 2022-06-24
첨부파일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는가-손해보험지 2022. 6월호(홍명호 대표)-1.pdf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가리고 있는가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출입구 앞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공정한 법의 집행과 판결의 엄중함을 상징하는 이 여신은 두건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법과 정의의 여신이 그 모델이며 디케(Dike), 아스트리아(Astraea), 유스티치아(Justitia)로 불린다. 디케는 그리스어로 법, 정의, 정도를 뜻한다. 유스티치아는 로마어 로 정의를 뜻하며 오늘날 영어의 Justice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디케는 미술작품에서 칼을 든 모습으로 그려졌고 유스티치아는 형평을 의미하는 저울이 더해졌다. 그래서 오늘날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는 왼손에 평등의 저울, 그리고 오른손에는 이성과 정의의 힘을 상징하는 양날의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대법원 정의의 여신도 정의에 대한 판단(특히 법원의 판단)이 심판받는 대상에 따라서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눈을 가리고 있고, 법 적용은 누구에게든 같은 원리로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법원에 갈 때마다 무심코 지나치던 정의의 여신을 돌아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의 판단이 그 대상에 따라서 달라지는 판결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임의비급여 쟁점에 있어서 개인이 병원에 청구하는 경우와 보험사가 병원에 청구하는 경우에 실질적인 법적 쟁점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그 결론을 달리하고 있으며, 하급심 법원에서는 상반된 결론이 내려지고 있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급여에는 요양급여와 법정 비급여가 있지만, 그 외에도 임의비급여가 있다. 임의비급여는 법정 비급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이 비급여로 처리하고 환자로부터 진료비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임의비급여에 대해서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 실손 보험 임의비급여 쟁점을 둘러싼 논쟁에서 보듯 법원, 의료기관, 보험회사, 개별 보험계 약자 등 관련된 모든 주체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실손의료비 보험 계약관련 분쟁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구조를 취한다. 원고는 보험회사이고, 분쟁의 대상은 실손의료비 보장 보험계약이며, 피 고는 병의원이나 의사 등 의료기관이다. 병원은 임의비급여에 해당하는 시술을 하고, 환자에게 진료비를 받는다. 그 후 실손 보험의 피보험자인 환자는 보험사에 실손의료비 보험금을 청구하고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는다. 실제로는 병원이 시술을 하기 전에 환자가 실손 보험에 가입하였는지 확인하고 보험금 지급에 대하여 안내를 하거나, 실손 보험 환자를 여러 경로로 적극적으로 유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쟁에 대하여 몇 년 전에는 보험사의 청구가 받아들여져서 병원이 부당이득금을 반환하기도 하였지만, 최근에는 보험사가 병원을 상대로 보험계약자를 대위하여 청구한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에서 보험사의 청구를 기각하고 있는 판결이 많다. 보험사의 주장은 임의비급여 의료비 는 보험계약에서 정한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므로 병원은 해당하는 진료비 상당의 부당이득금을 반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대법원 2012. 6. 18 선고 201027639 판결에 의하면, 의료기관의 임의비급여 행위는 현행 법령상 원칙적으로 치료비를 환자로부터 받을 수 없고, 설령 환자와 병원 사이에 임의로 치료비를 지급받았다고 하더라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왜 최근 법원에서는 임의비급여 행위를 한 병원에 대한 보험사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소 각하 내지 청구 기각을 당하는 것일까? 법원이 근거로 드는 이유를 따져보자.


법원이 드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보험사와 병원 사이에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다.

(2) 보험사는 민법 제404조의 채권자 대위권을 법적 근거로 하여, 병원에 대하여 부당이득 채권 반환 청구를 하는데, 법리상 채권자 대위권 행사의 요소를 충족하지 못한다.

(3) 채권자 대위권이 인정되려면 보험사의 권리 행사가 환자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없어야 하는데, 환자가 병원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한다는 보장이 없다.

(4) 법적 요건상 피보험자의 무자력일 때에만 인정될 수 있는 것인데, 환자가 무자력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임의비급여 실비 보험 청구는 심각한 모럴 해저드에 해당하고, 사회 정의에도 반하기 때문에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결과이다.


대법원이 임의비급여 행위는 환자로부터 치료비를 받을 수 없다고 판결해 놓고, 병원과 환자 간의 관계로 임의비급여 치료비가 발생하여 보험사가 환자에게 지급한 임의비급여 치료비는 보험사가 병원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청구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법원이 범법임을 판결하 고 그 범법을 다시 문제없다고 인정해버리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명확한 법리가 청구권자에 따라서 달라지는 판결은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은 최근 헌법상 국민의 보건권을 위협하는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로 인한 치료비 반환청구에 관한 사건의 공개 변론을 개최하면서 사실 관계 및 법률적 전제를 바탕으로 심리했다. 그중, 원고인 보험사가 피고인 의원에 직접 치료비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환자가 의원에 치료비를 지급하고, 다시 보험사가 환자인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보험사와 의원 사이에는 직접적인 금전의 수수(授受) 관계는 없다. 이 상황에서 보험사는 환자를 대위해 의원에게 직접 치료비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민법 제404조의 채권자대위권을 그 법적 근거로 삼았다. 채권자대위란 채권자가 채무 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권리를 대신해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은 채권자대위권 행사를 인정할지 여부에 대해 채권이 금전채권인 경우에는 신중을 기해왔다. 그 이유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 관리 행위에 부당하게 간섭하지 못하도록 함에 있다.

그래서 대법원은 금전채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채무자가 자력(資力)이 없는 경우를 원칙으로 채권자대위권 행사를 인정해왔다. 따라서 보험사의 채권이 금전채권인 이 사건도 그 대위권 인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 및 사회적 정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


환자들은 자신이 받은 의료행위가 급여인지 비급여인지, 아니면 임의비급여인지 잘 알지 못하며, 해당 의료행위에 대한 치료()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따라서 환자들은 병의원에서 청구하면 청구한 대로 치료비를 지급하게 되므로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 해 보험사가 환자들을 대신해 병의원 등에 부당하게 취득한 이득의 반환을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최근 일부 병의원 등에서는 수익을 더 늘리기 위해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를 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내원한 환자에게 실손의료보험 가입 여부를 묻고 관련 컨설팅까지 하는 등 수익창출(cash cow) 타깃으로 삼고 있으므로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보험사가 환자들을 대신해 부당이득을 취한 병의원 등에 직접 그 반환을 청구하도록 함이 타당하다.


그런데 이러한 법리와 사회 정의 사이의 괴리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일차적 원인은 일부 병의원 과 환자의 모럴 해저드에 그 책임이 있다. 보험 자체가 모럴 해저드를 언제든지 야기할 수 있는데, 피보험자와 병원이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임의비급여 사안에서 보험사의 안이한 손해사정 업무 처리가 문제를 확대한 측면도 있다. 보험사는 보험계약자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보험계약의 범주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였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보험사는 엄격한 손해사정을 하여 임의비급여에 해당하는 치료비는 보험약관에서 보장하지 아니하므로 면책처리를 하였어야 한다. 이렇게 보험계약상 범주 내에서 의료실비 문제를 해결하였다면, 간단하고 명확하게 끝났을 일을 보험사가 부실한 손해사정으로 법원에 빌미를 준 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원인은 법원의 보험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법원은 보험사를 사회적 약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임의비급여 진료행위에 대하여 환자가 병원을 상대로 반환 청구를 하였다면, 법원은 환자의 손을 들어 주었을 것이다.


보험사의 엄격한 손해사정은 보험사의 권한이자 책무이다. 다수의 보험계약자를 대리하여 보험금 지급업무를 처리하는 보험사는 약관에 근거한 엄격한 손해사정업무를 하여야 하는데, 의료실비 문제에 있어서는 부실한 손해사정을 하고 나서, 나중에서야 보험계약이 아닌 민법상 채권자 대위 권을 활용하여 우회적으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를 한 것이 패소의 원인이기도 하다.


보험전문가인 보험사는 마땅히 보험계약을 근거로 하여 명확한 손해사정을 하고 분쟁을 처리하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법원의 잘못된 인식과 의료기관의 모럴해저드도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 보험사가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누수 되는 보험금을 보험료 인상으로 해결하는 한 선진 시장으로의 진입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형 보험시장이 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보험 본연의 기본을 지키는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험의 정도 이외의 다른 지름길은 없다. 그럼에도 실손의료비 보장 보험 분쟁의 본질을 뜯어보면 보험사 스스로 정도를 포기하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지 안타깝기만 하다.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 : 홍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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