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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살, 우리와 제도가 막아야 한다
게시일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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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우리와 제도가 막아야 한다



사업에 실패한 어느 가장이 깜깜한 방파제에서 부인에게 전화를 건다. 잠간의 통화 후 그의 차는 바다로 돌진하는데 공교롭게도 콘크리트 시설물에 바퀴가 걸려서 바다로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다시 차를 후진한 후 다른 방향으로 몰아 결국 바다로 빠져 생을 마감한다. 소설 같은 이 장면은 실제 소송에서 확인된 사실에 대한 묘사다.


유족은 보험금을 청구하고 보험사는 자살을 이유로 면책했는데 소송 결과 자살입증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선고됐다.


목격자도 있고 부채에 대한 간접증거가 있었음에도 소송에서 보험계약자의 자살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판결은 상당히 많은데 이러한 사건에서 우리 법원은 대개의 경우 유족에게 온정적인 판결을 하고 있다. 아마도 법원은 보험을 유족에 대한 사회 안전망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는 법원이 보험계약의 기능과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며 취약계층이나 약자에 대한 사회정책은 별개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마련되는 것이 정상적이다. 보험계약으로 사회정책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보험계약은 우연성을 필수적 요소로 한다. 인보험계약에 의해 담보되는 보험사고의 요건 중 우연한 사고또는 우발적인 사고라 함은 사고가 피보험자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예견치 않았는데 우연히 발생하고 통상적인 과정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사고의 우연성 내지 우발성에 관해서는 보험금 청구자에게 그 입증책임이 있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서울중앙지법 2021가단 5056882 판결, 대법원 선고 200335215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이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보험자에게 있다.


이에 따라 보험자는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대법원 2011113066 판결).


이처럼 보험약관 체계의 구성이 잘못돼 있는 것이 문제다. 고의 사고는 면책사유가 아니라 보상하지 아니하는 손해 항목에 규정돼야 하는 것이 보험계약의 원리에 부합하는데 보험자가 고의 사고를 면책사유에 규정하는 바람에 입증책임이 보험계약자가 아닌 보험자에게 전환되는 결과가 된 것이다.


아마도 보험약관 작성 당시에는 당연한 내용을 면책사유에 한 번 더 규정해 강조하려고 한 의도로 보이는데 소송 법리상 입증책임이 전환되는 결과가 돼 버린 것이다.


개개인이 자살에 이르게 된 연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프지만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자살을 방조해서는 안된다. 만에 하나라도 보험금 지급이 자살의 유인책으로 기능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자살율이 높은 나라다. 자살율의 증가는 사회를 병들게 하며 보험제도적 측면에서도 자살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보험계약은 우연성이라는 보험의 기본 정신을 반드시 준수해 다수 보험계약자(보험단체)의 이익을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 개별 사안에 있어서 각 기관의 온정적인 태도는 전체적인 사회의 방향성을 잘못 인도할 수 있다. 마치 보험약관이 잘못 만들어져 자살이 늘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2021년 어느 날 젊은 여성이 자신의 친정집 아파트 13층 베란다에서 떨어져서 사망했다. 고인의 사망 사건을 내사한 경찰은 고인이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내사를 종결했다. 유족은 사망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하여야 할까?


푸른 5월에 우리가 고민하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다. 하지만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자살을 막는 노력을 충분히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법무법인 도원 대표변호사 : 홍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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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링크: http://www.insweek.co.kr/56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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